2009년도 개인전(빛 갤러리)

본인의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의 세계를 물질로써 재현하여 빛의 시각적 환영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한 해 한 해 살아가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일들을 “빛”이라는 주제를 통해 근 몇 년간 작업해오고 있다. 전시라는 형태를 빌어 작품을 통하여 세상과 소통 한다는 일은 매우 매력적인 일이다. 특히 세상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나같은 성격으로는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직업이라는 생각도 든다. 작업이라는 일이 마치 정해놓지 않은 목적지 없는 여행을 떠나는 것과도 같아서 작업 과정에서 일어나는 예기치 않은 일들로 뒤범벅이 되는 경우도 많고 반면 생각지도 못하는 일들로 인해 예상 외의 희열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지향하는 빛의 세계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아직까지도 그리고 여전히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작업을 하는 과정은 어찌 보면 빛을 따라가는 일과도 너무나 많이 닮아 있어서 빛을 화두로 하는 본인의 작업은 앞으로도 긴 여정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작업내용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한다면, 나는 ‘빛을 그린다’는 의미에서보다 어떻게 하면 ‘빛을 재현해낼 수 있을까’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빛에 관한 재현의 문제를 회화라는 이차원의 평면 안에서 풀어나가려는 의지는 아마도 나의 의식과 무의식의 전반에서 연유되어진 것 같고 재현의 실마리를 사물의 본질에서 찾으려는 생각은 시간이 흐를수록 본질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데로 나아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으면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 해나가는 기술이 숙달되어져야 할 텐데 오히려 나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이번 2009년도 전시의 작품 <diagram of the Light> 작업은 보는 이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spiritual dimension 혹은 비가시적인 영역을 작품을 통해서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하고 상상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제작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빛의 ‘시각적인 환영’을 그려내는 일이 나의 작업의 근간을 이룬다 할 수 있다.

삶을 시작하는 지점에서 마침표를 찍는 지점까지의 시간을 하나의 긴 선으로 그어서 볼 때, 긴 선은 무수히 짧은 시간의 단위들로 이루어져 있듯이, 무수히 작은 삶의 파편들은 단순한 도형으로써 암시되고, 화면 안에서 흩어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하면서 결국은 어느 한 지점을 향하여 끊임없이 맴돌고 부유하고 있는 형상이다.

그리고, 작품 안에서 보여지는 여러 상반되는 요소들(예를 들면 평면과 입체라든지 원형과 사각, 빛과 색, 수직과 수평등)은 본인 작업의 외관상 특성이라 할 수 있는데 얼핏 보면 회화작업이기도 하면서 입체작업이기도 하고 반대되는 요소들이 한 화면 안에 어울어지는 형식을 즐긴다. 그러한 심경의 배후에는 아마도 우리들의 삶의 모습들을 화폭에 담고 싶어서인 것 같다. 화면위에서 부유하는 조형 요소들은 우리가 삶에서 끌어안고 살아가야하는 문제들-영혼과 육신, 삶과 죽음, 자연과 문명, 시간과 공간 그리고 갈망, 열정, 애환, 분노, 슬픔, 기쁨, 후회 등의 삶의 감정들-까지도 포함하는 은유이자 상징일수 있으며 그것은, 모순되고 상반되는 요소들이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하고 상호 보완하면서 절충하고 때로는 격돌하고 부딪히면서 평정을 찾아가는 삶의 모습의 메타포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번 전시 작품 가운데 <황금 배경 인물도>의 작업은 다소 주제에서 벗어나 보일수도 있지만, “빛”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제작되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인물도를 그려보자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은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이다. 살아생전에 인물화 한 점 제대로 그려드리지 못하고 돌아가신지 이년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붓을 들게 된 것에는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로 못난 자식(?)이 개인적으로 앓고 있는 고질병 때문이다. 부모님의 초상화에 이어 가족들까지도 한사람씩 모두 화폭에 담게 되었다. 평소에 진심 어린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성격 때문에 가족들에게 이 기회를 통하여 만회를 해보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무엇보다도 가족과의 관계회복을 통한 자신의 내면적 치유를 위하여 제작되었다는 의도가 은밀히 담겨져 있다.

덧붙여서, <황금배경인물도>에 착안하게 된 데에는 개인적으로 일본 유학 시절에 접했던 13세기 이태리의 수도승이자 화가이기도 했던 프라 안젤리코의 성모자상을 전통기법인 템패라화로 모사했었던 경험을 되살려 보고자 했던 것이기도 하다. <황금배경인물도>의 작업은 앞으로도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작업해 나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