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 이찌로1999년 개인전 서문에 부쳐

사토 이찌로1999년 개인전 서문에 부쳐

박현주의 1999년 개인전 서문에 부쳐………(글 동경예술대학 미술대학 교수 사토 이찌로)

스승과 제자로써 박현주와 인연을 맺은 지 벌써 5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나는 박현주의 작업 활동을 옆에서 지켜 보고 온 한사람으로써 내가 바라본 박현주에 관하여 몇가지 이야기 하고자 한다. 현재 박현주는 동경예술대학 미술학부 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쳐 박사과정1년차에 재학중이다. 일본에서는 Gallery Q(1997년), 고바야시 화랑(1998년)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그 이외 다수의 단체전에도 적극 참가해 왔으며, 금년11월에는 현대미술의 유망주의 한 사람으로써「ART-ING TOKYO 1999;21☓21 presented by SAISON ART PROGRAM」에 선정되어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박현주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 한 후, 뉴욕 대학 회화과에 유학하였는데 당시의 회화 작품은 모더니즘이 발견한 순수한 유희 충동에서 보여 지는 듯한, 그리는 행위의 원초적 충동과 같은 아름다움이 화면 가득히 배여져 있는 미국의 전후 추상 표현주의 양식에 영향 받은 듯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잠시 한국에 머무는 동안 박현주는 작품의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내가 본 박현주의 작업은, 흘러내리는 듯한 유연한 붓의 운동감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恨의 감정이 작품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듯한 다소 경직된 화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러한 시기에 나는 박현주 학생의 지도 교관으로써 동경에서 만나게 되었고 나로서는 그녀가 내부에 잠재된 응어리를 화면 안에서 풀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일본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나오는 새로운 작품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 후1997년도 일본에서의 가진 첫 개인전에서, 박현주의 작업은 또다시 변화를 맞이한 듯 했다. 이전 작품에서 보여진 눈물과 같은 딱딱한 형태는 화폭 속으로 녹아 들어가게 되었고, 세포와 같은 형태는 생명체를 암시하기도 하는 듯이 원초적인 형태로 다시 표출되면서 화면 위를 부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뉴욕에서의 작품에서 보여준 색채의 범람은 사라졌고, 단색계의 차분한 색조가 화면을 뒤덮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박현주는 우에노 캠퍼스에서 1시간이상 떨어진 토리떼 캠퍼스로 통학하면서 학부생 대상의 「회화기법사 재료론」을 수강하였다. 강의 내용은 서양화, 동양화를 포함한 회화의 원리를 재료와 기법적인 측면에서 고찰해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회화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표현과 기법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매번의 강의를 통해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우에노 캠퍼스에서는 사토-기지마 세미나가 주 1회 진행되고 있었는데 세미나의 내용은 Daniel V.Thompson의 『템페라화』의 영문 번역과 병행하여 13세기 초기 이태리 르네상스 시기의 황금배경의 템페라화를 모사하는 것이었다. 모사 수업은 작품의 지지체(support)에서부터 시작하여 밑바탕칠(ground), 부조(pastiglia), 금박 입히기(gilding), 각인(punching), 채색에 이르기까지 되도록이면 당시의 탬패라화를 그대로 재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박현주는 Fra Angelico의 성모자상(1433-5년작)을 부분 모사하였는데,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모자간의 모습이 아주 진솔하게 표현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유화기법 재료연구실의 또 하나의 수업인 사까모토- 다키나미의 세미나인 크리틱에서는 사진과 텍스트를 이용하여 자신의 작품을 프리젠테이션하는 것이었다. 박현주는 세미나에 적극적이고 성실한 자세로 참여하였는데 이러한 수업의 성과들이 그녀의 작품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고 여겨진다.

성상화라고도 일컬어지는 초기 이태리 르네상스시기의 템페라화는 배경이 금박으로 처리되어 있다. 금박으로 처리된 배경 부분은 숙련된 수 작업으로 연마된 탓으로 흡사 거울면과도 같은데 여기에 빛이 닿으면 빛은 굴절,흡수 되지 않고 거의 정반사를 일으킨다. 따라서 반사광에 의한 빛의 효과는 마치 금박면 그 자체가 빛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금박면은 성인의 후광 또는 광배를 의미하며, 그것은 바로 성스러운 빛을 제시한다. 미술사가 곰브리치는 이를 가리켜 빛의 즉물적 도입이라고 표현하고 이 후 르네상스를 거쳐 바로크시대로 이어지는 회화의 특징과는 다른 선상에 놓인다고 보았다. 즉, 회화의 양감과 공간처리에 있어서 금박면은 점차 사라지고, 백색 물감에 의한 명암 단계의 표현이 화가 스스로에 의해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르네상스와 바로크로 이어져 내려오는 회화의 기법상의 특징이기도 하다.

여기서 박현주는 황금배경 템페라화의 「성스러운 빛」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금박면은 정면이 아니라 측면으로 이동되면서 측면의 깊이에 두께를 증폭시키게 된다. 따라서, 회화라기보다는 오브제에 가까운 형태로 변하게 되면서, 오브제는 단일 갯수가 아닌 복수로 제시되고 있다.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오브제들은 빛이 닿으면서 측면끼리 정반사를 일으키는데 이로 인해 시각적으로 측면이라는 실체는 사라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빛 그 자체가 서로 반사되는 현상만을 감지하게 된다. 한편 정면은 각각의 면적이 측면에 비해서 축소됨과 동시에 백색화 된다. 그 백색은 실체가 사라진 공간에 질서 정연하게 집합체로 구성되고, 나아가서 백색 오브제의 집합체로 인한 일종의 환영(illusion)이 생성되어, 마치 오브제들이 흰 벽면 위를 부유하고 있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박현주의 내면에 깔려있는 내재된 잠재의식의 표출이라 보여 지며, 또한 20세기 예술을 특징 짓는 단어이기도 한, 순수화, 구성화, 무의식화, 절대화라는 모더니즘의 코드로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를 바로 눈앞에 두고, 기도하는 감정을 삶으로 하는, 즉 과거의 영원한 예술의 본질과 정신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박현주 에게서 느껴진다. 그리고 거기에서 탄생되는 작품들을 나는 앞으로 계속 지켜볼 것이다.